풀꽃이 되어, 풀잎이 되어 자서 전문 김양식 저.

풀꽃이 되어, 풀잎이 되어는 초이 김양식 선생님이 62세 되시던 해에 “정읍후사” “초이시집” “숫고양이 한마리” “새들의 해돋이” “서초동 참새”등 다섯권의 시집을 주제와 소재별로 분류해 한권으로 묶어 놓았던 첫 번째 시선집 입니다.

풀꽃이 되어 풀잎이 되어 서문

첫 번째 시선집을 내놓으며…

언제부터인가 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스스로 도태되어 가게 마련이라는 진리에 순응하려 했습니다.

참으로 어지셨던 부모님으로부터 귀한 삶을 받아 이렇듯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온 지 어느덧 60년이 지났음을 스스로에게 새삼 일깨워 주는 요즘입니다. 지금껏 나이 같은 것은 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등단한 분필 생활 20여 년간, 겨우 다섯 권의 시집을 내놓은 지도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마치 산사(山寺)를 찾아들면 첫째로 산문(山門)을 통과하고 다음으로 일주문(一株門), 천왕문(天王門)과 불이문(不二門)을 차례로 지나야만 법당에 다다를 수 있듯이, 돌이켜보면 나의 시의 세계도 역시 산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 겨우 법당 앞에 설 수 있게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나의 다섯 권의 시집들 가운데서 소수의 시편을 제외하고 그대로 실은 것입니다. 이는 그 다섯 권의 시집들이 이젠 어디서고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시편들을 정리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사실, 나는 1945년에 폐를 앓다가 돌아가신 문학청년이셨던 오라버니 덕으로 열 살 때부터 시를 읽고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라버니는 민족주의 의식을 지닌 애국청년이었습니다. 오라버니는 어린 나에게 이광수, 김기림, 김안서, 타고르의 시를 읽게 했고 또 우리의 역사와 반일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틈틈이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가르침이 내 정신세계를 계발시켜 주는 데 커다란 요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두 떠나가신 부모님과 끝내 조국 해방을 목전에 두고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오라버니의 삶은 바로 오늘까지도 내 삶에 윤택한 자양이 되어주고 있음을 더욱 실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이 첫 시선집을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 영전에 그리고 이날까지 나의 문필생활을 이해하며 허물없이 좋은 친구로 살아온 남편에게 바치려 합니다.

끝으로 나의 작품을 마다치 않고 기꺼이 받아서 출간해 주신 행림출판사 이갑섭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92년 12월
서초동 一燈香室에서 初荑 金良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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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 초이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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