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어머니초이 김양식 자서 본문

월간문학시인선 초이 김양식

아침부터 밤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꿈 속에서도 아련이 그리운 자태로 

내 삶을 지탱하여 주신 분

다만 착하신 어머님 뿐이러니 

참으로 간절이도 눈물겹게 

끝내 잊지 못할 단아한 모정母情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풀꽃처럼

항시 곱고도 슬프시던 

내 어머님 뿐이러니

 

 

종로구 내수동 50번지

어머니, 우리 삼 남매가 제일 행복했던

우리 집 호적지 [서울 종로구 내수동 50번지]

안채가 있고 뒷채가 따로 있던 먹기와 한옥집

아흔아홉 칸 대감댁은 아니지만 그 절반 정도 되는

할머니는 언제나 소리 없이 집안 살림을 지키시고

아버지는 곧은 자세로 매일 아침 은행에 나가셨다

내가 따르던 큰 오빠는 경복중학교 1학년

조금 심술궂은 작은 오빠는 덕수소학교 4학년

나는 매동소학교 1학년이던 그 기억은 선명하다

4칸 마루에서 오빠들과 재밌게 웃고 놀던 추억은

참으로 오래오래 해묵은 사진첩 속 사진으로만 남아

70년도 훌쩍 너믄ㄴ 세월에 묻혀 있던 행복에 미소진다

뒷채엔 백천 조씨댁 규수와 결혼한 5촌 아저씨

무슨 극단의 무대감독이라시던 5촌 아저씨

신혼내외 예쁜 보금자리 새댁은 차려 놓은 신방에

가끔 나를 불러들여 황해도식 풀각시도 만들어 주고

종로구 내수동 50번지에는 정답던 3남매의

봄 아지랑이 같은 꿈들이 흠뻑 서려 있었다

(지금은 경희궁의 아침 이란 아파트단지가 그 일대에 들어서 있다.)

 

 

6.25동란 (1)

6.25동란, 탱크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따발총을 쏴대며 인민군들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갑자기 무얼 챙겨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할지

오뉴일 찌는 복중에 피난길도 막막했다

오라는 데 없고 갈 곳도 없으니 더욱 막막했다

어머니는 막 대학생이 된 나를 데리고

녹번리 농가의 어느 아는 집을 찾았다

나를 시골의 아낙네처럼 검정 치마 회적삼에

맨발로 고무신을 신기고 머리엔 수건을 두르게 했다

행여 빨갱이들이 끌고 갈까 잔뜩 겁이 나셨다

동트기 무섭게 어머니와 나는 고추밭에 나가

온종일 고춧잎을 따 모으는 일을 해야 했다

나는 될수록 어머니 등 뒤에 웅크리고 앉아

온종일 쉽없이 고춧잎을 큰 소쿠리에 따서

가득가득 해우고 또 채워야 했다

7~8월 뜨거운 뙤약볕에 허리띠를 졸라메며

악에 받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삽화 : 金元學 

정보 관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 초이 문학관
yunyesu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