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선생의 석장의 그림

<수필> 2016년 1월 27일 初荑 씀 (미당 서정주 선생과 천경자 화백과의 즐거운 추억)

매우 오래 전의 특별한 사건이라면 사건일 것이다. 1972년 3월 24일 오후의 헤프닝이다.   당시 대한민국 예술원 건물은 경복궁 동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시멘트 건물로 단조롭게 지어져 사용되고 있었다.  그 건물은 언제부터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바로 나의 첫 번째 시집 <정읍후사 井邑后詞>가 목판본 2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된 직후로, 그 시집을 받으신 천경자 선생님과 未堂 선생님이 더불어 예술원 회의에 참석 후, 같이 만나자는 약속이 되어 있었던 날이었다.  

한 오후 3시쯤에는 회의가 끝날것이니 예술원 앞, 경복궁 마당에서 다같이 만나자는 말씀이셨다.  황창한 새봄의 향기와 봄기운에 나뭇잎 순들이 파릇파릇 눈을 뜨는 초봄의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한 경복궁 벤치에 앉아서 저명하신 미당 선생님과 유명한 여류화가 천경자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철없는 소녀처럼 즐겁기만 했다. 아니 꽤나 흥분되어 있었다는 표현이 더욱 정직할 것이다.  나는 그 분들을 기다리며 혼자 새봄의 설렘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예술원 회의가 끝났는지 두 분이 내가 앉은 벤치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그분들도 새봄의 특별한 봄기운을 듬뿍 들이마신듯 매우 유쾌해 보였다.

세 사람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즐거운 대화들이 오갔다.

함박웃음이 저절로 피어오르는 가운데 주고받던 대화들도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손만 놓으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즐거웠다. 주고받는 세 사람의 ㄷ화 또한 다채로운 색깔의 풍선처럼 부풀어 하늘로 날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문득 내 가방속에 가지고 다니던 자그마한 스케치북이 생각났고 엉뚱하게도 미당 선생님께 불쑥 제의를 했다.

“선생님, 천경자 선생님을 좀 그려 보실래요? 오늘 따라 천경자 선생님이 너무 멋지세요.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미당 선생님은 웬일이진지 즉각 반응을 보이셨다. “그럴까? 그거 참 재미있겠는걸…” 

나는 오히려 미당 선생님의 즉각적인 답변이 야간 놀라웠으나, 바로 들고 있던 작은 스케치북을 건네 드렸다. 그날따라 스케치용 연필이 백 속에 없어 마침 손에 잡힌 눈썹용 연필을 챙겨드렸다.

천경자 선생님은 계속 즐겁게 웃고 계셨고, 나는 조금도 서슴엇이 선을 긋고 계시는 미당 선생님의 손끝을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얼굴모양은 다 그리셨다.

“선생님, 천경자 선생님은 얼굴에도 꽃과 나비들을 잘 그리시는데… 천경자 선생님 얼굴에도 꽃이나 나비도 그리시면 모양이 날 것 같아요.” 

미당 선생님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으셨는지 즐겁게 웃으시면서 바로 서슴없이 얼굴그림 여기저기에 나비를 그리셨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미술에 무척 재주가 있으신 것을 모두 모르고 있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미당 선생님이 그리신 천경자 화백의 얼굴은 놀랍게도 많이 닮아 있었다. 천경자 선생님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옆에 앉아 즐거워하시는 두 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선생님, 제 얼굴도 한번 그려주세요. 이쁘게요…”  내 말에 세 사람은 또 한번 박창재소.

미당 선생님은 내 얼굴은 보지도 않으시고 바로 손을 놀려 그리기 시작했는데 몇 분 안되어, “다 그렸네. 내가 괜찮게 그렸느지 모르겠지만…”  하시며 한참 즐겁게 웃으시면 내 얼굴이 그려진 화폭을 건네주셨다.  미당선생님이 즉흥적으로 그리신 내 얼굴은 마치 한 소녀의 초상화 같았다. 나보다 훨씬 젊고 예뻐 보였다. 고마웠다.

미당은 가속도가 붙은 듯이 다음 장에다가는 눈앞에 서있던 나무도 그리셨다. 아직 나뭇잎이 피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였다. 그리고 그리신 그림 한 장 한장에는 힘을 주어 ‘S’라는 사인도 잊이 않으셨다.

이렇게 해서 미당이 잠시 한자리에서 그리신 3장의 작은 스케치는 이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값진 유작이다. 특히 우리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겨져야 할 귀한 유물이 아닌가.

참고로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60 나이엑 누구에게 배운 바도 없이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사후에 1,000여점에 달하는 그림을 남겼으며, 현재는 인도 5대 국보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한점도 해외에 나가지못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 문단에서는 기억해둘만 하며 또한 참고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춘 삼 월  春三月

                                                   詩. 김양식

간 밤, 내 꿈에

산목련 흰 꽃이 활짝 피었더니

이 아침 미당未堂의 알묏집 개피떡에

관악冠岳의 쑥국새 울음소리 새로 와 박히더니

맵시 나는 떡맛의 팥개피 속엔

새빨간 동백꽃이 피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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