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夕陽이 눈부시어 <서문 序文> 김양식

밤새 서설瑞雪이 날리더니 이 새 아침의 햇살은 더욱 눈부시다 이제 모두 뒤로 되돌리는 나의 70年을 참으로 맑게 퍼져 나는 햇살 속에서 숨죽이며 차분히 회상의 아득한 길을 따라 나서본다.

나의 태어남은 집안 어른들의 기쁨이었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내가 성장하여온 과정에서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큰 자양이 되고 격려가 되었으며 어떠한 고난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두 오빠를 위로 태어난 고명딸이었기에 아마도 나는 한 집안의 꽃이요, 기쁨의 원천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는지 눈감으면 아련히 회상되는 수 많은 장면들이 뽀얀 안개 속의 느린 화면처럼 비쳐오기도 한다.

文學靑年문학청년이던 큰오빠의 영향으로 나는 잘 모르면서도 일찍이 시집을 들고 읽는 시늉을 했고 그러다 보니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우습게도 작문시간에 ‘詩’라는 것을 써서 내놓았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담임선생의 칭찬의 대상이 되었고 한 달쯤 교실 뒷면 게시판에 나붙어 있었다.

아마 그 일이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 쓰게 한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선생님은 그날 이후로 각별히” 나를 눈여겨보시며 아껴주셨다 비록 그분이 일본인이었지만一。

어렸지만 日本일본 식민치하에서 못 먹고 못 입고 고통받던 괴로운 학창시절, 그리고 종전에 이어진 해방의 혼돈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집안 어른들의 사랑과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고 노래하고 운동하고 또 詩도 쓴답시고 열심히 썼다.

학교행사 때는 으레 자작시 낭송을 했고 또는 고등학교에서 배운 외국어 시낭송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당당하고 멋지게 해냈다. 이같은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지금에 와 생각해 보아도 그 원동력은 틀림없이 부모님을 위시한 가족들과 친지.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께서 한결같이 베풀어주신 ‘사랑’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 老匠노장 未堂 미당께서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멋진 말씀을 하셨는데, 내게 있어서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사랑이었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처럼 오늘에 이르는 동안 그 깊고 귀한 사랑을 어찌 나만 받기를 바라겠는가. 내가 받아온 소중한 사랑을 나누려 한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하여 이날까지 참으로 大過대과 없이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문단의 선후배님들의 따뜻한 가르침과 보살핌 안에서 하루하루 精進정진하며 열심히 성장하여 올 수 있음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이번에 70년을 살아온 기념記念이라며 나의 시전집과 또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여러 선후배님의 향기로운 덕담德談이나 글귀를 모아 별권으로 낸다는
간행위원회의 이야기다. 모두가 다 고마울 뿐이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며 또한 精으로 보내주신 따사로운 말씀들은 내 가슴에 와서 새롭게 이슬 머금어 보다 맑은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오늘 아침 습관처럼 펼쳐본 인도의 고전 <바가다드.기따>中에서 다음과 같은 소중한 가르침의 구절이 눈에 띄어 거듭 읽어 보았다. 무엇인가 또 한 번의 깨우침을 얻은 듯하여 마음이 기쁨으로 물결짐을 느꼈다. 여기 그 구절을 적어 귀한 깨우침을 나누고 싶다.

| 마음을 극복한 사람은 이미 지고아地高我에 이르러

마음은 바로 최선의 벗이 되건만

마음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음이야말로 바로 최악最惡의 적敵이 되느니

– 디야나. 요가편 제 6절에서 |

인도 요가철학에서 중요시되고 있는것은 바로 ‘마음’ 이다. 우리 서로 착한 마음의 벗이 되어지기를 진실로 기원하며 오늘의 모든 기쁨과 사랑과 감사를 더불어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참으로 자애로우시던 부모님과 나를 詩의 세계로 눈뜨게 해준 오라버니. 그리고 오늘의 소중한 가족과 친지, 선후배 여러분과 이번 출간에 힘을 들여 애써온 간행위원회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저 한다.

 

2002년 입춘절, 초이 김양식

정보 관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 초이 문학관
yunyesuk@gmail.com